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클라우디오 아바도 (문단 편집) == 음악 스타일 == 오페라로 유명한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답게 이탈리아 오페라에 상당한 강점을 보였지만, 어릴 적에 [[빌헬름 푸르트벵글러]]와 [[브루노 발터]],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등의 [[레전설]]들이 출연한 여러 관현악 연주회를 실연으로 보고 자란 경험 때문인지 표준 독어권 레퍼토리에서도 상당한 실력자였다. 또 동향인 [[루이지 노노]]와 [[살바토레 스키아리노]]를 비롯해 [[피에르 불레즈]], [[칼하인츠 슈톡하우젠]], [[죄르지 리게티]], [[볼프강 림]], [[쿠르탁 죄르지]], [[베아트 푸러]] 등의 현대음악 작곡가들과도 적극적으로 교류하고 여러 작품들을 초연 혹은 재연하는 등 현대음악 공연에 매우 적극적이었다. 전반적인 해석 기조는 시기에 따라 변화가 큰 편인데, 자기만의 스타일을 고집하기 보다 각 시기별 유행하는 음악적 해석을 기민하게 따르는 것이 특징이다. 베토벤 이전 고전주의 음악에서 특히 유행에 민감한 편이지만, 유행을 덜 타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에서도 이런 점은 예외가 아니다. 템포 측면에서 시기 별로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다양한 변화를 보이지만, 특유의 날카로움을 지양하면서 힘을 빼는 사운드를 추구하며 외성부와 내성부의 균형을 추구하는 음향적 특성만은 거의 일관되게 유지되는 편이다. 베를린 필 시절 리허설 때 여러 속도의 템포를 시도해가면서 단원들에게 어떤 템포가 더 좋은 것 같냐고 자주 물어봐서 단원들의 원성을 샀다는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템포에 대해서는 의외로 그다지 중요시하게 생각하지 않는 편임을 알 수 있다. 많은 지휘자들이 음악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템포를 꼽는 것과 차별되는 독특한 점이다. 80년대까지는 전반적으로 20세기 초중반의 거장들이 확립한 전통을 따르면서, 그 가운데서 음향적인 측면에서 무게를 덜어내는 [[실내악]] 지향적인 면모를 보여주었다. 때문에 젊지만 오히려 다소 보수적인 지휘자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90년을 기점으로 당시 돌풍을 일으키고 있던 시대연주 스타일을 대거 수용하면서 해석의 큰 변화를 보이게 된다. 시대연주가 주로 베토벤 이전 음악을 다루기 때문에 고전주의 해석에서 큰 변화를 겪었다. 단적인 예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베토벤]] 교향곡 전집을 1980년대 후반에 빈 필과 만든 것과 2000년대 초반에 베를린 필과 만든 것을 비교하면 같은 사람이라고 전혀 느끼지지 않을 정도로 큰 폭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후기 낭만주의에서는 변화의 폭이 상대적으로 적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80년대와 90년대 이후 말러 등 후기 낭만주의 해석에서도 적지 않은 차이점이 발견된다. 과거의 지휘자들이 수시로 하곤 했던 악보의 변형 관행에도 엄격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만은 않다. 2000년대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그 동안 통용되던 악보가 아닌 조너선 델 마 편집의 베렌라이터 신판 전집 악보를 사용해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아바도 이전까지 베렌라이터판은 대개 원전연주 단체가 택하고 있었지만, 아바도 이후로는 현대악기를 사용하는 일반 악단들에서도 채택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바도가 악보의 가필에 대해서 항상 완고히 배제한 것은 아니었다. 아바도가 악보 가필에 엄격했던 것은 그의 활동 중후기에만 해당한다. 시대연주의 영향을 받기 전 젊은 시절은 물론이고, 만년에 루체른 페스티벌에서 연주한 베토벤에서도 관습적인 수정을 상당부분 적극적으로 채택하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 제3번 등에서는 1950년대 이후에는 거의 쓰이는 경우가 없는 사장된 호른 가필도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다. 오케스트라 모차르트와의 베토벤 연주에서도 관행적인 가필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모차르트 레퀴엠 연주에서는 여러 판본을 혼합한 자신만의 판본으로 연주하였는데, 이는 연주의 다양성 측면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악보 자체에 수정을 가하는 것을 배격하는 원리주의자들에게는 크게 비판받을 수 있다. 오페라의 경우에도 카라얀 등에 의해 4막판이 결정판으로 취급받던 [[돈 카를로스]]를 원전판 5막판으로 최초 공연하여 녹음하여 큰 화제를 모으는 등 악보의 원전을 매우 중시하는 지휘자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역시 실상은 또 다른데, 그의 장기인 로시니의 오페라에서는 카라얀이나 토스카니니 같은 구세대 지휘자도 하지 않던 가필을 대거 집어넣어 공연하곤 했다. 아바도가 가장 자신있어 하는 분야인 이탈리아 오페라에서도 의외로 레퍼토리가 편중되어 있는데, 거의 베르디에 집중되어 있다. 베를린 필 재직 시절도 콘서트 오케스트라인 베를린 필이 원래 베르디를 연주할 일이 거의 없지만,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은 물론, 발트뷰네 콘서트, 송년음악회 등에서 꾸준히 베르디를 지휘했다. 그밖에 때때로 로시니의 작품도 상당히 다루었지만, '''의외로 푸치니를 거의 전혀 지휘하지 않았다. 그의 디스코그라피에 푸치니가 전혀 없다!!!''' 푸치니를 지휘할 시간에 [[드뷔시]]를 지휘하겠다며 푸치니를 전혀 다루지 않았다. 독어권 레퍼토리에 강하다고 서술되어 있지만 사실 이쪽도 레퍼토리가 상당히 제한되어 있다. 브루크너, 바그너,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등 독어권 후기 낭만주의 거장들의 작품을 일부만 상당히 제한적으로 다루었다. 브루크너 교향곡의 경우 1번을 종종 지휘한 것 이외에는 평생 손에 꼽을 정도로 밖에 지휘하지 않았으며, 브루크너의 최고 걸작인 교향곡 8번은 평생 한번도 지휘하지 않았다. 바그너의 경우에는 가장 평이한 로엔그린, 그리고 현대음악의 전조가 된 작품인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제외하고 다른 작품들은 지휘하지 않았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역시 가장 파격적인 엘렉트라를 종종 지휘하였지만 그외에 다른 오페라들은 지휘하지 않았고, 교향시는 죽음과 변용 정도만 레퍼토리에 있었다가 1992년 송년음악회에서 그의 초기 교향시 대표작들을 한번씩 지휘했다. 그러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영웅의 생애, 알프스 교향곡, 돈 키호테, 가정 교향곡 등 슈트라우스의 대작 교향시들은 다루지 않았다. 전기 낭만주의에서는 멘델스존 교향곡들이 나름 좋은 평가를 받고 있어 이쪽에 정통해 있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멘델스존을 제외하면 사실 이쪽도 아바도가 그다지 선호하는 영역이 아니다. 슈만의 경우 여러 음반사에서 반복적으로 녹음한 피아노 협주곡을 제외하면 의외로 거의 다루지 않았다. 죽기 1년 전 슈만 교향곡 2번 녹음을 남기기 전까지 슈만 교향곡이 그의 레퍼토리에 없었다. 무소르그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를 원전판으로 지휘, 녹음한 것이 대서 특필되면서 국민악파 음악에도 매우 깊은 관심과 일가견이 있다는 인식이 퍼져 있지만, 사실 국민악파 쪽도 매우 제한적이다. 대표적인 국민악파 거장인 시벨리우스도 거의 지휘하지 않았다. 청소년 음악 교육에 상당히 적극적이었는데, 생애 란에서도 언급했지만 청소년 관현악단을 두 개나 만들 정도로 이 분야에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그리고 해당 악단의 단원들이 나이가 차 퇴단하자, 이들 중에서 단원을 뽑아 유럽 실내 관현악단(유럽연합 청소년 관현악단 출신)과 말러 실내 관현악단(구스타프 말러 청소년 관현악단 출신)이라는 두 실내 관현악단을 결성하면서 연속성을 가지게 만들기도 했다. 또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관현악 운동인 [[엘 시스테마]]에도 깊은 관심을 보여 직접 현지로 가서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을 비롯한 악단들을 지휘하기도 했다.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오케스트라 모차르트 역시 자신이 조직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젊은 단원을 주축으로 한 후 밀라노 라 스칼라좌나 베를린 필의 수석 등을 임시로 데려오는 식으로 해서 구성했다. 음악회에서 극적인 효과를 싫어하는 점잖은 이미지로 알려져 왔다. 특히 LD로 발매되어 화제를 모았던 베를린 필 취임 공연의 말러 교향곡 제1번 리허설에서 악보에 지시된 대로 호른 단원들이 기립하자 기립하지 말고 벨만 들고 연주하라고 지시한 장면이 회자되면서 그런 이미지가 더욱 각인되었다. 그러나 이후에는 성향이 달라져 콘서트에서 다른 지휘자들이 잘 시도하지 않는 작위적인 효과를 자주 사용하였다. 93년 베를린 필 송년음악회에서는 합창석에 기둥처럼 솟은 높은 단을 만들어 성악가들이 그 위에 서서 부르도록 하여 시각적으로 큰 효과를 주었다. 또 말러 교향곡 3번 마지막 악장에서 금관악기에 검은 모자(베를린 필)나 보자기(루체른 페스티벌)를 씌워 연주하게 한 경우, 말러 교향곡 제9번과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제6번의 마지막 악장, 모차르트 레퀴엠 등에서 무대 조명을 어둡게 하고 연주자 보면대에 스탠드를 켜서 연주하게 한 경우, 말러 교향곡 제2번과 제5번 등에서 악보 지시에 관계 없이 호른 단원 등을 기립시켜 연주하게 한 경우 등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